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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종: 성경에서의 위치

    이 첫 장에서는 순종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성경의 어디를 보아야 할지를 제시함으로써 순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자 한다. 어떻게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낙원에서의 유일한 덕행이 되며 인간이 그곳에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되었는지 보자. 믿음이나 사랑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다. 순종이 이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순종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유일한 명령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순종이다.


    이제 에덴동산에서부터 성경의 마지막으로 눈을 돌려보자. 여러분은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22:14에서 “그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2:17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기록하였고, 14:12에서는 성도들의 인내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기록했다.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낙원의 상실에서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그 법칙은 변함이 없다.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오직 순종뿐이다.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고 요한계시록에서의 순종은 다시 그 길을 회복케 했다. 만약 당신이 어떻게 불순종이 순종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이 처음과 마지막의 중간에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또한 빌립보서 2:8-9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그리고 히브리서 5:8-9 “그가… 순종함을 배워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사역의 목적은 순종을 다시 회복하는 데 있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동참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영광도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다시 얻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이러한 순종으로 다시 회복시키셨다. 구원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낙원, 갈보리, 천국, 이 모든 것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선언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제일 첫 번째의 소원도, 그리고 마지막 소원도 오직 단순하고 보편적이며 변함없는 순종일 뿐이다.”


    이 순종은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될 때마다 항상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난다. 인류의 새로운 선조인 노아, 택한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던 때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는 말씀이 열아홉 번이나 반복되고,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야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 중에 충만하게” 되었다. 또한 불순종의 대가로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방황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던 때도 순종할 때에만 가나안 땅이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에서 왕이 임명될 때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순종이 필요함을 엄히 경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끝으로 구약에서 신명기 다음으로 이 ‘순종’이란 말이 나오는 곳은 주로 백성의 불순종을 탄식하고 있는 예레미야서이다.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하나님께서 희생에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이 이 한 가지의 사실, 즉 인간을 다시 순종으로 회복하게 한다는 사실에 종속되어 있다. 심지어 그의 독생자의 희생에 대한 말씀까지도 인간을 순종으로 회복시키는 것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오직 “내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씀밖에 없다.


    신약에서의 순종이라 하면 우리는 즉시 주님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이 순종을 위해 세상에 오셨음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셨다. 그는 세상에 오실 때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9)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 한다”(요 5:30)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신이 행하신 것과 수난당하신 모든 것에 대해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8)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그의 죽으심에 대해서까지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사역 전체를 통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순종이 구원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그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그가 요구하신 것은 말씀 중 어디에서나 항상 순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주님께서는 이 순종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것과 그 놀라운 사랑을 내려주시는 것도 이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가능성을 말씀하심으로써 순종을 지극히 영광스러운 위치로 높이셨다. 어떠한 말씀도 이보다 더 분명하고 힘 있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더 많이 성경을 연구하고 더 많이 기도하며 더 오래 하나님과 교제해야 되겠다고 결심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지금까지 간과해 왔던 것이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의 순종이 곧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비결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험해 보았는가? 하늘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전심으로 사랑해 주시는 것과 땅에서 우리가 그를 전심으로 순종하는 것이 동시에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실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실 수도 없으며 또한 우리가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도 없다.


    이제 사도들을 생각해 보자. 다음의 두 구절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마음속에 주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는 말씀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오순절 성령강림을 위해 필요했던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순종이었다. 둘째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는 말씀이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의 소원을 보여준다. 우리는 죽기까지 순종해야 한다. 이 땅 위에 있는 그 무엇도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사람에게서 이 순종을 빼앗거나 방해할 수 없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려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역사하신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니 우리도 이 의에 대하여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사도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순종은 바로 참된 거룩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우리는 벧전 1:22에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나 강한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의 진리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이 순종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의 유일한 보증이다. 그는 요일 3:18-22에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다. 순종은 선한 양심의 비결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으신다는 담대함의 비결이다.


    순종은 성경에서나 하나님의 마음에서나 또 그 종들의 마음에서나 다 이와 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순종이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지 못할 때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도 불완전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적인 순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면 불완전하던 생활은 놀랍게 변화된다. 예수님 안에 거하시던 하나님은 우리로 이렇게 변화된 생활을 하게 하실 수 있다. 성령께서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자.


    2. 그리스도의 순종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그러므로 순종은 의를 온전히 향유하는 생활로 들어가는 문이며 길이다. 모든 것이 바로 이러한 순종을 알고 참여하는 데 있다. 우리가 개심할 때 비록 순종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거나 전혀 모른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에는 완전한 의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주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나아가 참으로 이 의를 믿고 따르며 또 이 의가 “의의 종들”인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게 될 때에는 이 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더욱 진실하게 붙들면 붙들수록 순종에 동참하려는 욕망도 더 간절해질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들로 살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그의 순종을 배워야 한다:


    (1) 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하나의 생활원리였다.

    (2) 주님께 있어서 순종은 하나의 기쁨이었다.

    (3) 주님께 있어서 이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귀가 열려 그의 가르쳐 주심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순종하기를 열망할 때이다. 그리고 그 인도하심을 만족하게 되는 것도 우리가 순종하기를 열망할 때이다.

    (4) 주님께 있어서 이 순종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온 마음을 다 바쳐 순종하는 것만이 참된 순종이며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능력이 되고 우리의 영혼에 힘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분을 우리 앞에 모시게 된다면, 또 우리 자신을 그에게 드릴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의 신령한 역사(성령을 통해 우리의 전생애를 다스리시는 역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을 것이다.

    (5) 순종은 주님의 겸손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신을 의뢰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 이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와 싸울 것이다. 그러나 순종을 이기지는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곧 피조물의 유일한 의무요 축복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겸손과 온유와 인내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낮아지게 될 때이며 그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고 그 앞에 엎드리게 될 때이다.

    (6) 주님의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곧 주님께서 우리 속에 능력을 부어주실 수 있는 방법이 됨을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그 자체가 바로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순종은 한 사람의 순종하심 가운데서 그 근거와 생명과 보증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과 달리 순종하신 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배우며 믿자. 그리고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영접하며 사랑하며 힘써 닮아야 할 모본으로 삼자. 주님의 의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인 것처럼 그의 순종을 실천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유일한 갈망이 되게 하자. 이러한 그리스도(순종하신 자)를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그에 대한 우리 믿음의 진실함과 담대함을 드러내자.


    3. 참된 순종의 비결

    참된 순종의 비결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로 나아가기까지는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불완전한 순종은 항상 불완전한 생활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정치 않거나 끊어져 버린 생활이 치료되어 먼저 온전하고 건강한 생활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오직 우리 속에 계속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뿐이다.


    주님께서 순종을 배우시는 데는 고난이 필요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을 배우시기 위해 고난이 필요했던 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완전케 되기 위해서였다. 그가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은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에도 역시 순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원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순종하신 그리스도는 순종하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주님의 지상에서의 고난 속에서나 하늘의 영광 속에서나 그 자신 속에서나 우리 속에서나 순종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리를 잡는 곳이다. 불순종이 왕노릇하여 사망케 하는 이 세상에서 순종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속에서도 이 순종이 유지될 것을 약속하셨고, 우리 속에서 순종을 가르치시며 역사하신다. 그렇다면 이 순종의 학교에서 주님께서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시는가?


    1. 가르치는 자: 주님께서는 순종을 가르치실 때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순종의 비결부터 드러내신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 12:49-50)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듣는 것을 말한다. 이 음성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음성이다. 산 음성이 없는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


    2. 교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셨다는 것은 그가 성경에서 독립되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공생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은 그가 마귀를 정복할 때 사용하셨던 성령의 검이었다(마 4:4, 7, 10). 그가 복음전파를 시작하실 것을 인식하게 된 것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눅 4:18)라는 말씀에 의해서였다. 그로 하여금 모든 고난을 인정하게 하고 자신을 죽는 데까지 내어줄 수 있게 했던 것도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라는 말씀이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제자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눅 24:27). 순종의 학교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교과서이다.


    3. 배우는 자: 신실한 제자는 배우는 자로서 신뢰할 만한 스승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첫째, 그는 스승의 가르침에 자신을 완전히 복종시킨다. 둘째, 그는 스승을 완전히 신뢰한다. 셋째, 그는 스승이 요구하는 만큼의 시간과 주의를 아낌없이 바친다. 주님께서는 스승으로서 이것들을 주장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인정하게 될 때에는 그가 우리들에게도 이 순종을 잘 가르쳐 주실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4. 순종생활로서의 새벽기도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덩이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모든 가지들도 거룩하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의 첫 한 시간을 통하여 그 날의 모든 일에 축복이 임할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확신할 수가 있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붙들어 매는 줄을 단단히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 가운데 휩쓸리거나 바쁜 일들에 몰두할 때 또는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에도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고 순결하게 보존될 수 있으며, 모든 시험까지도 우리를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뿐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이 새벽기도와 순종 사이에는 밀접하고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새벽기도는 그날그날에 있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게 될는지 안 될는지, 또 우리의 생활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생활이 될 수 있을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는 싸움터이다. 우리가 만일 이 싸움터에서 승리하면 그날의 승리는 보장된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기뻐하는지 그리고 온 마음을 다 바쳐 그를 사랑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있는지는 바로 이 은밀한 골방에서 판가름 난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의 거룩하신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 우리가 그를 기쁘시게 하고 있음을 아는 것, 그로 하여금 우리에게 명령하시게 하며 우리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라”(삿 6:14)고 축복하여 말씀하시는 것 -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사모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매일의 새벽기도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임을 알게 될 때이다.


    5. 온전한 순종생활로 들어감

    주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은 곧 그의 아름다움이요 그의 영광이다. 이러한 순종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축복이다. 이러한 순종을 갈망하고 실천하는 것은 초신자에게도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그의 말씀대로 행치 않는 엄청난 실수를 면하기 위해 성도의 생활을 시작하는 처음 순간부터 이러한 순종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들의 개념이 막연히 일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백을 통해 특별히 불순종하고 있는 일들을 명백히 드러내야 하며 그리스도의 손에 내어맡겨야 하고 또 그에 의해 정결케 되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참된 순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살펴보자.


    주님께서는 먼저 율법에 호소하셨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파하려 하심이 아니라 이루시기 위함이셨다. 그는 한 젊은 관원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율법을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첫 시험단계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로 들어가려면 마땅히 이런 것들을 고백해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자비로우며 그의 용서하심처럼 용서하며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자기희생과 선행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우리가 화났을 때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무정하고 날카로운 불친절한 말들과 또 자비와 선을 베풀어 달라는 요청을 무시하는 마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능력을 얻기 전에 먼저 탄식해야 할, 그리고 범죄한 오른쪽 눈을 뽑아 버리듯이 뽑아 버려야 할 불순종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주님께서는 자기 부정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사랑과 순종의 결핍은 자기를 사랑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할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질 것과 자신의 생명까지도 미워하고 버려야 할 것과 모든 자의 종이 될 것을 요구하셨다. 주님이 이렇게 요구하신 것은 자기 자신(자신의 뜻,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 자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곧 모든 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순종은 우리의 영혼을 점점 가리워 그의 빛과 평강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서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과 결단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같은 행동은 잘못을 분명히 깨닫지 않고는 있을 수 없으며 부끄러워함과 뉘우침의 고백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고백이 있은 후에야 새 마음의 선물을 깨닫게 해 줄 중생의 씻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첫 단계로 고의적인 죄와 본의 아닌 죄의 차이점에 주의해야 한다. 순종은 바로 고의적인 죄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주신 새 마음이 죄의 속성을 지닌 육체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서도 가끔 억제할 수 없는 사악한 교만과 무정함과 더러운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끊어버릴 수 있고 물리칠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불순종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들로부터 구출되려면 중생한 자의 의지로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보혈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으로써만 가능하다. 이 특징에 유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것은 순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의 힘이 그 영역 안에서 효력을 나타내는 것처럼 성령의 능력은 의지가 힘을 미치지 못하는 것에까지도 정결케 하는 역사를 나타내실 수가 있다.

    두 번째 단계로, 순종을 절대적인 완전의 개념에 연관시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의 재능과 능력이 각각 다른 것으로 판단하시며, 자녀들에게 그날그날의 순종만을, 아니 시간 시간마다의 순종만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사모하며 배우고 있는지를 보고 계신다. 완벽주의가 아닌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행할 때에만 그 순종은 받으실 만한 것이 된다. 성령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하신다.


    그리스도를 항상 가까이 계시는 우리들의 주와 힘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순종할 수가 있다. 명하시는 목소리는 곧 감동하시는 목소리이다. 인도하시는 눈은 또한 격려하시는 눈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전부가 되신다. 즉 명하시는 그리스도시요 가르치는 모본이시며 굳세게 하는 조력자가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순종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함이셨으며 또한 순종하는 가운데 인간을 그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기 위함이셨다.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며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자. 또 그가 우리로 그의 모든 것과 그가 가진 모든 것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가운데서 그에게 죽기까지 순종하자.


    6. 믿음의 순종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이 있음을 안다. 이미 우리는 나아가서 그곳에 거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으며 이 부르심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비전을 믿는 가운데 담대히 나아가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간다. 우리 자신을 주께 완전히 내어 맡겼고, 이 모든 것이 우리 속에서 진실이 되게 해 달라고 구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우리의 삶과 일이 하나의 거룩하고 유쾌한 순종의 수준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복된 무지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마침내 상속을 받는다.


    우리의 목표는 높은 데 있다. 우리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와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도 증진시켜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러한 삶은 축복과 약속의 땅이 아니라 다만 무거운 짐과 고생과 실패의 삶일 뿐이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당신을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부르신다.


    그분이 당신 속에서 무엇을 이루실 수 있는지를 와서 경험해 보라.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자신을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내어맡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떠한 축복을 내려 주시는지를 와서 경험해 보라. 그 좋은 땅의 영광스러움을 믿으라. 당신을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그리스도와 그 길에 계속 머무시며 역사하실 성령 안에서 당신을 부르시는 그 하나님을 믿자. 믿는 자가 들어간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 보자.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에 신뢰를 둔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의 버팀줄이었다. 또한 이 버팀줄은 바로 우리들의 버팀줄이다. 하나님은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깊은 관심과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축복을 받아들일 영적 능력은 있을 수 없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본 것을 열망하고, 열망한 것을 기대하고, 기대한 것을 받아들인다. 그렇게도 많은 기도들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우리가 소원하는 영적 축복들을 주장하고 소유할 수 있는 명확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온전치 못한 믿음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모든 일에 있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나 목적이 없다면 그러한 축복을 받아들일 영적 능력도 있을 수 없다.


    혹시 당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최상의 원리에 즉시 복종할 수 없음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그 해답이다. 당신이 매 순간 믿음의 순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는 데 있어, 그리스도는 자신을 의뢰하기를 요구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사역은 오직 순종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가 오늘날 나누어주시는 것도 바로 이러한 순종이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의 영이라 할 수 있는 순종의 영을 주신다. 이 영은 매순간마다 그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지속적인 순종의 보증이 되시는 것이다. 그가 주시는 것과 행하시는 것 외에는 하늘 아래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두려움이 제거되고 우리의 모든 필요가 충족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이다.


    성령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그분의 은혜는 영원한 사랑의 선물이다. 우리의 순종을 책임져 주시며 이 순종을 가르쳐 주시며 그의 임재하심으로 그것을 보증해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랑하는 마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사랑을 알 수 없으며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우리로 순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랑하는 마음이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충만하게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심은 자연의 법인 양심의 소리에 대해서도 민감한 관심을 갖게 한다. 성령은 양심을 통해 말씀하신다. 당신이 양심에 불순종하고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이것은 곧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충실하지 않는다면 누가 더 큰 것으로 맡기겠는가? 양심이 지시해 주는 바를 따라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는 의지는 곧 하나님의 뜻까지도 행할 수 있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나 의무감에 눌려 억지로 순종하는 율법적인 순종을 경계하라.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나 너무 완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당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으로 행하지 않고 다만 양심을 편케 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도 경계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 순종의 학교에서 우리의 연구가 유익한 것이 되려면 마음 판에 이 말이 새겨지기까지 결코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매일 순종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나는 매일의 순종을 위해 그분의 능력 안에서 나 자신을 그분께 드린다.”


    이러한 믿음의 힘 가운데서 그리고 연약한 중에서도 완전케 되는 족한 은혜를 확신하는 가운데서 산 순종의 생활로 들어가라. 이렇게 될 때 당신 속에 살아계신 순종의 주님이 당신의 순종을 확보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과의 교제 가운데 당신의 순종의 삶은 사랑과 기쁨의 삶이 될 것이다.


    7. 순종의 학교

    남김없이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학교(순종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까지 그대로 실천하는 순종과 또한 그가 보여주시는 데까지의 모든 것을 행하겠다는 의지와 서약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영적 기관이요 능력인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너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어떻게 해서라도 그 뜻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도록 힘쓰라.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 은밀한 곳에서 당신에게 지혜를 알게 하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더욱 새롭게 하라. 육체와 육적인 마음의 속임에 대비하여 성령의 감찰하시고 확신케 하시는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라.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말씀의 판단 아래 있게 하라. 모든 것을 성령에 의해 설명되고 적용되게 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이 그분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임을 알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라.


    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경험이 주어지는데 그는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자신의 순종이 죽음으로까지 인도한다는 것(그리스도의 순종처럼)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공생애 동안 세상과 죄에 대한 그의 저항은 완전하시고도 완벽하셨다. 그러나 세상과 죄의 시험으로부터 최종적으로 해방되는 것과 그 권세를 제압하는 것은 그가 세상에 속한 삶과 죄에 대하여 죽으시기 전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그는 그러한 죽으심 가운데서 완전한 무기력으로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의 손에 맡겼으며 또한 다시 일으켜 주시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주님이 새로운 생명과 영광으로 충만케 되신 것은 죽음을 통해서였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함으로써만 그의 순종이 그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아는 것과 이러한 죽음을 원하는 것과 자신을 완전히 비우도록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의 순종이 배워야 할 가장 높은 차원의 교훈이다.


    8. 최후의 명령에 대한 순종

    우리는 순종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 바쳐 순종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최후의 명령을 깨닫고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것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최후의 명령의 힘을 약화시키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명령은 개인적으로 주시는 명령이나 특정한 명령보다는 본질상 그 구속력이 적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역할을 다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별로 책임이 없다는 생각, 극심한 어려움이 있는 곳에서는 순종이 절대적인 명령이 될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가 기꺼이 최선을 다하려고만 하면 그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셈이라는 생각 등이 그러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이것은 순종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은 제자들이 처음 그 명령을 받아들일 때의 마음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분의 명령을 받아들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다. 주님은 모든 지체가 그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기대하시며 성령에 의해 기운을 얻기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지체들이 주님의 행하시는 것을 위해 살기를 기대하신다. 이러한 진리는 내 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의 지체들이 각기 그 역할을 다할 줄로 믿는 가운데서 이 지체들을 지니고 다닌다. 주님은 내게서 아무것도 더 이상 요청하거나 기대할 것이 없을 정도로 나를 완전히 그의 몸에 속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도 그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완전히 그에게 복종시킨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중요한 계명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속력을 미치는 것같이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이 최후의 명령도 그와 같은 구속력을 가진다. 여러분이 만약 이 명령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전에 또 어떤 특별한 욕망이나 소명이나 어떤 일에 대한 적합성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을 주님의 뜻에 내어맡기라. 여러분을 훈련하며 자격을 주며 인도하며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주인이신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 주님으로 하여금 그가 여러분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게 하라.


    집을 떠나 외국으로 가는 것이 해외선교 지원자에게는 그것이 요하는 투쟁의 과정과 모든 방해거리를 떨쳐버림을 통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 지원자는 자신의 받은 사명 안에 거해야 할 뿐 집을 떠날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은밀한 서약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도움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복된 성령은 그 서약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완전히 전념하는 생활로 인도하는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되게 하실 것이다.


    순종을 즉시 실천에 옮기라.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의 특권이다. 여러분의 주위에는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형태의 신앙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구속받은 자로 생각하라. 또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그 뜻을 여러분도 가지게 하시는 성령의 복을 받은 자로 생각하라.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의 주인에게, 여러분의 왕에게 계속 집중시키라. 또 그의 보좌에 계속 집중시키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최후의 명령을 주시기 전에 그리고 넓은 세상 밭을 가리키시기 전에 먼저 그들의 눈을 보좌에 앉으신 주님 자신에게로 돌리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이것은 우리에게 그의 능력의 충분성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었음을 생각나게 하는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환상이요 믿음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직접 역사하시는 그런 주님인 것이다.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능력과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 바로 이 두 약속의 기둥 사이에 교회가 세상을 정복하러 나아가는 문이 있다. 우리 모두 대장되신 주님을 따르자. 그리고 세상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그로부터 지시받자. 또한 전적으로 주님의 뜻과 그의 일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순종의 서약 가운데서 결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자. 해외선교든 국내에서의 헌신이든 간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순종의 종들로 가득 채워지기만 한다면 그의 영광스러운 계획(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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